모치즈키 세이헤이
최근 수정 시각: 2025-10-04 01:52:01
작성자: 가람
분류: 관련인
望月淸平もちずき せいへい 모치즈키 세이헤이
첨부 이미지
출신지 일본
토사번
소속 토사근왕당
가족관계 모치즈키 마스미(아버지), 모치즈키 카메야타(동생)

1. 개요

토사의 향사(백찰).
토사근왕당 200인 혈맹서의 20번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사카모토 료마의 절친한 이.

또한 고베해군조련소의 일원인 모치즈키 카메야타친형이다.

2. 행적

1. 기록

생몰년은 불명.

모치즈키 카메야타의 형으로서, 생전에는 료마가 '큰형'(大兄)이라고 부르며 따랐다.

오토메에게 보낸 편지에 세이헤이의 언급을 한 내용이 남아있다.

「날마다 국가와 천하를 위해 논의를 거듭하며 노력하고 있어. 이 나라의 사람들은[중략]모치즈키 세이헤이. 이는 참으로 훌륭한 사내다.」

토사근왕당이 번의 탄압을 받을 때 타케치 즈이잔의 석방을 요하는 건백을 올리거나, 료마의 안위를 걱정해 편지를 자주 주고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오미야 사건 전 세이헤이에게 마츠야마번의 거처를 찾는 것을 요청하는 료마의 편지가 있으나, 닿지 못한 채 료마는 살해된다.
오미야 사건으로 료마가 사망한 후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실제 고치에 있는 모치즈키 가의 묘에 있는 세이헤이의 묘는 묘비가 아니라 묘패로 되어있다.

2. 작중묘사

모치즈키 카메야타의 마이룸 대사로 언급된다.

카메야타의 인생의 전반적인 영향을 끼쳤던 이. 
전형적인 무가 집안의 장남이자 가주로 묘사되나 따스한 면이 있는 쾌활한 남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케다야 사건에서 카메야타를 잃은 후, 오미야 사건에서 료마마저 죽자 정치와 세상에 회한을 느낀다.

"카메야타, 료마…니들이 이라고 가불면은, 나가 뭣헌다고 이름을 남기겄냐…"

료마의 사후 도착한 편지를 보고, 자신이 그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까지 안고 은거하고 만다.
이후로 기록이 남지않은 것은 그 탓.

 

카메야타를 근왕활동에 끌어들여 죽게 만들고, 료마마저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을 이기지 못했다.
스스로 기록을 남기는 것을 포기하고 살아갔다는 부분에서, 영령의 좌에 기록이 있을 가능성조차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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