篠原泰之進
시노하라 타이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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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 | 일본 |
이쿠하군 | |
생몰년도 | 분세이 11년 11월 16일(1828년 12월 22일)- 메이지 44년(1911년)6월 13일 |
소속 | 어릉위사 |
시노하라 타이노신은 어릉위사에 소속된 막부말기의 지사. 신선조 대사(유술사범), 어릉위사.
아명은 타이스케(泰輔), 유신 후에 하타 시게치카(秦 林親)로 개명.
이쿠하군의 타카미무라의 호농이자 석공업자인 시노하라 모토스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시절부터 무예를 좋아해 모리베에몬과 다네다호죠인류 창술사범에게 창술과 검술을, 코우카 2년에는 양이심도유술사범인 시모사카 고로베에게 주짓수를 배웠다.
카에이 5년, 번사 오구라 카즈노신을 섬긴 후 가로인 아리마 우콘의 중간역이 되었으나 안세이 4년에 아리마의 에도번저 근번으로 상경해 키타다츠 일도류를 배웠다. 그러다 곧 벌어지는 사쿠라다 문 밖의 변의 영향을 받고, 바로 다음 달 번저를 탈출해 존왕양이의 뜻을 안고 미토에 체재했다.
분큐 원년, 에도의 양심고류의 사범 토즈카 히코스케의 슬하에 잠복 후, 하타모토인 쿠보타 시게카츠의 슬하에 머물던 중 대양이론의 영향을 받고, 다음 해 분큐 2년, 오사카나 교토에서 근왕지사들과 교제하기 시작한다.
분큐 3년이 되던 해, 카나가와 봉행소의 행장 이사였던 쿠보타의 알선으로 봉행소에 고용되어 요코하마의 외국인 거류지의 경비를 맡게 된다. 핫토리 타케오, 카노 와시오 등 후의 어릉위사들과의 교제가 이루어진 것은 이 무렵이다. 동년 10월, 세관에 난입한 영국인 3명을 묶어서 방치하는 등의 폭행 사건을 일으킨 것이 원인이 되어 에도에 잠복하던 중, 이토 카시타로와의 교류를 돈독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