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폭력으로 감싼 정정

“관심없어.”

“응?”



카노는 백돌을 바둑판 위에 짓누르듯 놓더니 혀를 찼다.


“그런 비겁자는 관심없단 말이다.”
“갑자기 뭔 소린가 했다. 생각 정리가 좀 됐나보군.”
“정리고 뭐고, 답은 하나다.”


그러시겠지. 신파치는 입에 문 막대를 질근 씹었다가 흑돌을 내려두었다. 여전히 잘 두지는 못하지만, 처음 카노의 손에 이끌려 두었을 때보단 나아졌다. 몇 번이고 이기는 것이 질려서인가, 카노 쪽에서 신파치의 수를 하나하나 훈수했던 탓이다. 방금의 비겁자 운운은 무슨 소리인가하면, 식당에서 ‘카노 미치히로’를 마주한 후 기분나쁘다며 자리를 벗어난 후 영화를 틀어달라, 바둑을 두겠다, 신파치를 한참 성가시게만든 후에서야 감정을 문장으로 만들어뱉은 것 같았다. 이어진 ‘답은 하나’ 라는 말은 사실 생각이 정리가 되지않았다는 반증과 같은 것이지만. 그는 늘 그런 식으로 생각을 단선화하는 남자라는 것을 슬슬 신파치도 질리도록 알고있었다. 그야 신파치 본인도 고민은 필요없다느니 일단 날려버린다느니 복잡하게 넘어가기 전 생각을 쳐내곤 하지만, 그것과는 역시 맛이 다르다……고, 신파치는 확신했다.


“나가쿠라, 네 놈은 상관없는거냐.”
딱, 백돌이 놓인다. 흑돌은 뜸을 들인다.
“뭐가 말야?”
“나가쿠라 신파치가.”
“아아, 뭐……놀라긴했지. 근데 나쁠 거 있냐?”

흑돌은 바둑판에 깔끔히 자리를 잡는다. 바둑돌이 놓이는 소리가 깔끔했다. 다른 서번트한테 듣기로는 바둑판은 비자나무로 만든 것이 제일이라는 것 같다. 카노가 자기 입으로 바둑판이 어쩌니 저쩌니 한 적은 없지만, 생전에 만져본 것과는 확실히 질감이 다르니 아마 이게 그거겠지. 아무리 텅 빈 남자라도 관료 나리였다는걸까. 홋카이도 개척사의 유능한 관료. 그런 남자가 ‘바둑이 취미’라는 소문따위가 돌았다면 그야 그런 선물이 들어올테다.

이게 그 바둑판은 아니겠지만.



카노는 백돌을 놓더니 안의 흑돌을 골라냈다.
“고료가쿠에서, 핫토리 형님에게 미안하다고 하지 않겠다고 했었지.”
“……그건 핫토리도 곤란하다고 했다고.”
“상관없어. 나는 납득해주지않을거야.”


신파치는 카노의 옆에 놓이는 흑돌을 눈으로 확인하다가 눈을 맞춰보았다. 그림자는 걷히지않았다.


“납득해주지 않는다고.”
“그래…너는 어디에 죄책을 안고있는거냐.”
“난……”

카노는 돌을 두라는 듯 바둑판의 귀퉁이를 두드렸다. 신파치는 미간을 찌푸렸다가 으음, 하고 자리를 살폈다. 영 자리가 남지않는데 어디에 두라는걸까. 카노는 빈 곳 한 쪽에 손가락을 향하곤 말을 이어갔다.


"네 놈이, 신선조에 왜 죄책을 안고있지?"
"뭐?"
"신선조가, 아니! 히지카타 토시조가, 네 놈에게 뭘 잘했다고 자책을 끌어안느냔 말이다."
"그건, 내가 그 자리에서…"
"그게 왜 나쁜 일이 되는거지?"

신파치는 카노의 손가락의 끝을 보고서도, 좀체 흑돌을 놓을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하는거지? 카노 와시오는, 무슨 말을 하고있는거지? 신파치는, 평소처럼 그 말을 잘라낼 수가 없었다. 걷어냈던 것이 목을 타고 기어오르는 것만 같아 숨이 막혔다.


"도망쳤으니까…"
"닥쳐!"


쾅.

바둑판의 돌들이 튀어오른다. 신파치는 바둑판에 꽂혔던 시선을 들었다.


"미키 씨를, 시노하라 씨를, 토미야마를! 나를, 나를! 나를 도망치게 만든 네 놈이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거냐!"
"그건…!"
"아아아! 나가쿠라 신파치, 아아, 신선조라는 족속은 어째서 이렇게나! 어째서!"


떨어진 흑돌과 백돌은 경계를 잃고 바닥을 헤맨다. 신파치는 카노의 팔을 붙잡았다. 뜨겁다. 명백히 뜨겁다. 자켓을 벗고 이너차림인 그 몸은 열기를 토해내고 있다. 속이 미식거려 막대를 지긋이 씹고 말았다.


"그런 게 아니야!"
"무슨 소릴하는거냐! 방향이 틀려, 방향이, 방향이 틀리단 말이다! 나가쿠라, 나가쿠라! 어째서 우리에게, 어릉위사에게 사과하지 않는거냐! 신선조에게 휘둘린 주제에, 그들을 포장한 주제에, 그들을 위해 피를 뒤집어쓴 주제에!"
"그건, 난, 나는 그런 게 아니라고! 나는, 신선조를……."
"……그 남자는, 신선조에게 사과하지 않을거야……"

신파치는 말을 멈추었다. 그 남자라는 게 누군지는, 모를 수 없었다. 전달자로서의 자신, 기록자로서의 자신.
바닥에 흐트러진 돌들을 내려본다. 이미 바둑판 위는 엉망이 되었다. 카노는, 손을 뻗어 신파치의 옷깃을 잡아당긴다.


"나가쿠라, 네 놈은, 멍청해…"
"너에게 듣고 싶지 않아."

헐떡이는 듯한 숨이 방을 채운다. 카노의 눈에는 그림자가 걷혀있다. 기뻐서따위가 아니라, 슬퍼서가 아니라, 짜증도, 무엇도 아니고, '이해할 수 없다', 라는 것일까. 신파치도 카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원망을 모르는 것은, 더욱 그럴 수 없었다.

죽어가는 동료들을 볼 수 없어서 도망친 자신이, 동료들을 두고 살기 위해 떠나야 했던 그를 모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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