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노는 반나절만에 눈을 떴다. 뭘하고 왔는지 시뮬레이터에서 돌아오자마자 이토와 핫토리의 개인실 앞에서 쓰러지고말았던 탓에, 문을 열자마자 당황한 두 사람이 방에 들여 침대에 눕혀 자켓을 벗기고 이불을 덮어두었다. 얼굴이 달아올라있지만 이 곳엔 신선조가 있을리 없으니 아마 ‘복수열’이 아니라……
“감기군요.”
“응, 이건 확실히 그렇네.”
핫토리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인 이토가 카노의 이마를 쓸어주었다. 신선조의 옆에선 언제나 이정도로 고열이 끓는다. 그것은 어릉위사 시절 분명 동료이자 친우였던 토도를 앞에 두고도 마찬가지라는 걸 이토와 핫토리도 알고있었다. 카노가 자기 입으로 그 ‘스킬’에 대해 두 사람에게 설명한 적은 없지만,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법이다. 카노는 토도와 재회한 후로 그 어느 이야기도 하지않았다. 단 한 번 내뱉은 문장은 길지 못했다.
“'카노 미치노스케'는, 네 놈도 신선조라는 것을 잊고있었다”…는 말은 열을 담아 뱉었음에도 날이 선 차가움이 있었다. 토도가 대답을 돌려주지 못하는동안, 카노는 그의 팔을 잡았던 손을 놓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누구도 이 일을 화제에 올리지않았다.
눈을 뜬 카노는 숨을 삼키는가싶더니 제 몸을 더듬었다. 옷이 그대로 입혀져있는 것에 안심했는지 손을 이불 위에 떨어트렸다. 옆에 앉아있던 핫토리가 사과를 깎아 건네자 테이블에서 조용히 책을 넘겨보던 이토가 다가왔다.
“카노 군. 일어났어?”
“어디에 다녀왔나요?”
두 사람이 부모가 다쳐온 아이를 달래듯 건넨 말에 카노는 으음, 하고 침음을 흘리며 자신의 옆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죄송함다. 걱정을 끼쳤슴다.”
“아냐, 사과할 건 없지? 카노 군을 걱정하는 건 우리가 동료인 이상 아주 당연한 일이잖아.”
머리에서 떨어진 손은 사과를 받아든다. 그것을 한 입 베어문 카노에게선 사과를 씹는 아삭아삭한 소리가 난다. 먹는 동안엔 대답을 할 필요가 없어서인가, 이토는 괜히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카노 군, 홋카이도에 갔나요?”
잠시간의 침묵을 깬 것은 핫토리의 질문이다. 카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네.” 하고 긍정했다.
“머리를 식힐 요량이었슴다만, 이 꼴임다. 하하…….”
속이 텅 빈 듯한 웃음소리를 흘린 카노는 자신의 방으로 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자켓과 스카프를 걸치고 두 사람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둘은 그를 말리지않았다. 그보다도, 말린다고 해서 그대로 있어줄리가 없다는 걸 잘 알고있는 탓에 그만 둔 것에 가깝다.
요코하마에서의 카노, 도장에서의 카노, 신선조에 있던 시절의 카노, 아부라노코지 사건 이후의, 카노.
기록 외에는 알 수 없는 '카노'라는 제자이자 동료를 마주했을 때, 어릉위사의 두 사람은 재회가 늘 달가운 일이 아님을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칼데아에서 다시 만난 그는 특이점의 그와는 달랐지만, 영 어울려주지 않았다. 차를 마시면서도 괴이한 말을 뱉는 망가진 동료를 보는 것은 유쾌하지 못했다. 입으로 그런 말을 한 적은 맹세코 없으나, 시선마저 숨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속상함, 걱정, 어떠한 미안함. 사과를 반복하는 것은 카노라는 점이 또 그랬다. 웃으며 말을 잇다가도 새빨간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웅크리는 남자는, 신선조의 처단자이며 유신을 살아낸 선각자라기에는 어디에도 자부심이 묻어있지 않았다. 핫토리는 그럴 때마다 카노를 안아들고 이토와 함께 칼데아의 복도를 걸었다. 숨이 잦아드는 그를 달래듯 걷다보면, 주인을 잃고 해꼬지를 당해 길을 떠도는 개를 보는 듯한 기분에 잠겼다. 핫토리는 그럴 때마다 카노에게 들리지않는다는 확신을 안고서도 작게 속삭여주곤 했다.
“그런 뜻으로 했던 이야기가 아니었다”……고.
감겨있는 눈가에 맺힌 핏물이 그 날의 이토와 자신, 죽어버린 동지들이 흘린 피와 같아 핫토리가 작은 한숨을 뱉고있으면, 이토는 손을 뻗어 카노의 눈가를 닦아주곤 했다.
복도로 사라져가는 카노의 스카프를 보며 이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핫토리 군.”
“네, 이토 선생님.”
“우리, 어린아이를 키우는 것 같네.”
“하하,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손주까지 얻어 유신 이후를 살아낸 남자에게 무슨 말일까. 두 사람은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