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
피할 수 없는 답안

“어땠나? 기다유부시는. 영화와는 다른 맛이 있지?”

나가쿠라는 그 질문에 찌푸린 채로 궐련을 물었다. 머릿속에 남은 내용이라고는 마지막에 도쿠베에와 오하츠가 함께 목숨을 끊은 것 뿐이다. 

웃으며 감상을 묻는 눈 앞의 남자가 나가쿠라의 허벅지나 물건에 손을 대며 지분거리니 극에 단 한순간도 집중을 할 수 없어, 내용을 전부 놓친 탓이다. 나가쿠라가 짜증을 내듯 한숨을 내뱉자, 즐겁다는 듯 웃던 미치히로가 나가쿠라의 빈 팔에 팔짱을 끼어왔다. 

“뭐하는거야? 기분 나쁘게.”
“뭘 화를 내나. 데이트하는 기분을 내는거지. 아, 자네는 그런 것은 영 별로인가? 손자랑 오타루 영화관은 그렇게 들낙였다고 하더니….”
“그거랑 같나? 팔짱은 왜 끼냔 말이야. 다 늙은 사내놈끼리 이러는 건……”
“이러는 건?”

나가쿠라는 ‘쪽팔리지않냐’고 말을 이으려다, 자신을 비스듬히 올려보는 미치히로의 눈에 말문이 막혔다. 젊을 때에 비해 나른해진 눈이 새삼 묘한 기분을 불렀다. 나이가 들어서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 또한 그런데도, 그 눈이 기분을 들끓게 했다. 숨을 삼켰다가 깊게 뱉자 미치히로가 손을 겹쳐잡았다.

“다정한 부부같지?”
“헛소리를 자꾸 하고 있어.”

괜히 퉁명스레 말을 던졌지만 그의 단정하게 정리한 머리모양, 품이 커서 더 마르게 보이는 옷, 여유로운 미소와 도드라지는 속눈썹 그 모두가 그를 무서운 인상의 자신의 나긋한 ‘부인’으로 착각할만하다는 것을 나가쿠라는 내심 깨닫고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황당해서, 애써 더 거칠게 구는 것이다. 그의 팔에 걸어온 손은 평소와 달리 장갑이 끼워져있다. 드러나던 흉터를 일부러 가린 건가, 그런 생각까지 하려니 영 껄끄러워져 시선을 정면으로 향해버렸다. 

“극이 재미없었나?”
“볼 정신도 없었어. 네가…….”
“아하. 후후후…그럼 아쉬우니 요정에 갈까.”
“……여자라도 안겠다는거냐? 징그럽기는.”
“그럴리가. 방을 좀 빌릴까 하네. 걱정말게나, 내가 낼테니. 그 정도 돈은 얼마든지 있어. 자네같은 사람이랑 달리.”

나가쿠라는 쯧, 혀를 찼지만 그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확실히 기록에 기댄다면 카노 미치히로라는 남자는 홋카이도에서 관료로서 착실히 승진을 거듭하고, 퇴직 후엔 사업을 일구고 아내와 사이좋게 손주의 재롱을 보며 말년을 보냈다고 했으니 영령인 지금도 돈 정도는 얼마든지 있을테다. 무슨 괴악한 농담인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사양하면 또 귀찮게 굴 게 뻔하니 함께 발을 옮겼다.

과연 화려한 방에는 두 사람 뿐이다. 값은 맞춰서 치르겠다며 유녀들은 전부 물렸다. 사이에 놓인 주안상에 있는 술은 꽤나 좋은 향이 났다. 미치히로가 잔을 채워 나가쿠라에게 내밀었다.

“자, 한 잔 들게.”
“꽤 비싼 술인가보지?”
“호오, 알고있군 그래. 나도 나이가 꽤 들어서야 맛을 들였는데…”
“바보취급하기는.”
“알아챘나?”

모르는 게 이상하잖아. 나가쿠라는 툭, 말을 걷어차듯 뱉고 잔을 확 비웠다. 확실히 입안에서 감도는 것은 좋은 술의 향이다. 요정에서 늙은이 둘이서 뭘하고 앉아있냔 말이야. 나가쿠라는 상황이 이상하게만 느껴져서 말없이 술잔을 내밀었다.

“시중을 들라는건가? 자네도 취미가 나쁘군.”
“무슨 소리야. 너한테 듣고싶지않다고.”

미치히로는 웃으며 잔을 다시 채웠다. 어느 사이 외투는 벗고 기모노만을 걸치고있다. 병을 내려두더니 그대로 손을 올려 나가쿠라의 어깨에 걸쳐진 하오리를 잡아내렸다.

“쭉 들이키시지요.”
“……또 무슨 수작이야?”
“수작이라니, 아쉬운 소리하지말게. 기왕 왔으니 즐기는 편이 좋지?”

술이 들어와 살짝 멍해진 머리로도 미치히로가 하려는 게 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나가쿠라는 그게 싫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손이 자신을 만지는 것을 밀어내지 않았다. 마른 손가락이 나가쿠라의 가슴팍을 쓸어내리며 노래를 읊조렸다.

“이 세상과는 안녕, 밤과도 안녕…….”
영 집중하지 못한 극에서도 이 가사만큼은 머릿속에 남아있다. 마지막, 두 사람이 숲에서 죽어버리는 그 장면이 어렴풋 떠올랐다. 미치히로의 서늘한 목소리로 듣고있자면 어떠한 불쾌감이 목을 타고 올랐다. 그가 눈 앞에서 스스로 배를 가를 것만 같았다. 술기운으로 누르고있자면, 말이 이어져왔다.

“하지만 자네는 나와 그렇게 해주지 않을테지? 그 교차로에서, 나를 버리지않았나.”
말투에 조소가 서려있다. 나가쿠라는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입에서 여러 말이 뒤섞여 문장을 골라내기가 어려웠다. 이딴 소릴 하려고, 그런 극을…….

“시끄러워. 너도 널 거기에 버려뒀잖아…그게 아니었어도, 같이 죽을 순 없었다고. 나도, 너도.”

겨우 고른 말을 짓씹듯 뱉자 미치히로는 눈이 커졌다가 곧바로 눈꼬리를 휘어 웃는 얼굴이 되었다. 

“후후, 하하하……. 그렇지, 그렇군. 어쩌면 이렇게 낭만도 요령도 없는 남자일까.”
“……”
“나가쿠라 신파치는 그런 남자였지. 아아, 그래…그래서 사랑스럽고, 그래서 누구보다 미워…….”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안경 너머의 눈은 일말의 흔들림이 없다. 나가쿠라는 그 모습이 소름끼치면서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너무나, 너무나 애처롭게 들렸다. 답이 정해진 이야기를 해놓고, 그런 말을 하고 있다. 

“낭만이 없는 건 네 쪽이겠지.”

그런 답을 돌려주곤, 조용히, 미치히로를 품에 안았다. 맑았던 청년이 부서지고, 이런 남자가 되어버린 것이 싫었다. 품의 남자는 조용히, 아주 조용히 숨을 새근거리다가 나가쿠라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왔다. 더 이상 답이 돌아오진 않았다. 벽 너머로 새어오던 샤미센 소리가 뚝 그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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