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었냐.”
“…가만히 좀 있어봐라….”
신파치는 눈 앞의 바둑판에 손의 흑돌을 좀체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카노는 그게 답답한 듯 담배를 깊게 빨았다가 숨을 뱉었다. 허공에 연기가 빙그르르 올라가고, 신파치가 겨우 빈 곳에 돌을 놓았다.
“멍청아, 거기다가 두면 그냥 끝이잖아.”
“뭐 인마? 애초에 억지로 하게한 건 너 아니냐.”
카노가 그 말엔 대답도 않고, 담배를 문 채 손가락으로 툭툭, 바둑판의 빈 곳을 두드렸다. 신파치가 돌을 던진 것은 아니니 끝나진 않았지만, 별다른 수도 없으니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신파치는 그것이 불만스러워 입에 문 막대를 살짝 씹었다. 카노는 고민을 하는 티도 없이, 백돌 하나를 놓고 옆에 둔 재떨이에 담배를 털었다.
몇 번의 돌이 놓인 후에서야, 신파치는 깊은 한숨과 함께 돌을 거뒀다.
“…져, 졌다.”
“뭐, 그렇겠지…….”
승리감은 커녕, 아주 당연하다는 듯 돌을 정리하기 시작한 카노가 답잖게 입꼬리를 올렸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청년이 노인을 놀리고있나 싶은 기묘한 풍경이었지만 그야 그것은 아니다.
신파치는 카노와 있을 때, 무리해서라도 재림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었다. 분위기같은 걸 맞추고자 하는 건 당연히 아니고, 카노가 ‘노친네’니 ‘노망이 났냐’니 하는 소리를 하는 빈도가 심해지는 탓에 선택지가 없는 것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그런데 오늘 아침, 다른 신선조의 이들과 담소를 나누던 신파치의 앞으로 카노가 직진해온 것이다. 가까이 온 것만으로 주위의 공기가 후덥지근해질 정도로 열이 올라있는 카노를 보고, 신파치는 이미 골치가 아파와 히지카타나 사이토가 입을 열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콘도나 토도가 함께 있기도 했고.
그러나 카노가 한 말은 이례적인 것이었다.
“시간을 내라. 바둑을 둘거야.”
신파치는 놀라다 못해 들고있던 지팡이(사실 검이지만)를 손에서 놓칠 뻔했다. 늘 카노의 행동엔 관심을 두지않는 다른 멤버들도 잠시 시선을 둘 정도의, 이상한 소리다.
“이봐…바둑이라니, 무슨 소리냐?”
“복수귀께서 바둑도 둘 줄 아시나?”
끼어든 사이토의 비꼬는 듯한 말에도, 카노는 다른 대답 없이 어서, 하고 신파치의 손을 잡아채 당겼다. 놀아달라 보채는 어린애냐?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말로 꺼내진 않았다. 모두에게 손인사를 슬쩍 건넨 후 카노를 따라 가는 것이 다였다.
“…그래, 네가 바둑에 조예가 있는 줄 몰랐다마는…나는 그런 것엔 좀체 관심이 깊질 않아서 말이다. 앉아서 골몰하는 건 역시 맞질않으니…”
“…왜?”
“응? 왜냐니. 그냥 적성이 아닌거야. 뭐가 더 있겠냐.”
“…나는 이것 외엔…”
말이 끊겨서, 영 대화라는 것이 되질않는다. 영화를 보러 들어와서, 가만히 스크린에 정신을 쏟다가 품에서 잠드는 때의 카노와는 역시 분위기가 다르다. 그래도, 신파치와 단 둘이어서인지 식당에서에 비해 열기가 한참 가셔있다. 잠시 말이 멈춘 방 안에서, 바둑돌의 잘그락거리는 소리만이 울렸다. 방금 마친 것이 분명 세 판째. 카노는 내리 이겨서인지 영 재미가 없어진 모양이다. 물론, 두는 중에도 그리 재밌다는 얼굴은 아니었지만.
신파치는 아무렇게나 놓인 카노의 담배갑에서 한 대를 꺼내곤, 입에 물어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신파치의 것에 비해 쓸데없이 매워서, 올라오는 기침을 눌러야만 했다.
“바둑은 언제부터 둔거냐?”
연기를 한 차례 뱉어낸 신파치가 묻자, 카노는 눈을 굴리다가 ‘유신 이후’ 일 거라고 확신없는 대답을 돌려줬다.
확신이 없는 것은 카노가 늘 기억이 파편처럼 떠있기 때문임을, 신파치는 대충은 알고있었다. 유신 이후라면 아저씨나 된 후 인건가. 이러나저러나 골방 노인네같은 분위기구만…같은 시덥잖은 생각을 하고 있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 말이야…내가 이 모습이라고 바둑을 두자고 한 건 아니겠지? 늙은이 취급을 했다거나.”
“늙은이가 아니면 뭐라는거냐. 노친네같으니라고…….”
“이 자식이.”
“…그래서 바둑을 두자고 한 건 아니야.”
신파치는 이어서 설명이 돌아오리라 무심코 작은 기대를 가졌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하는 수 없어 하아, 옅은 한숨을 뱉고 시선을 굴려 카노의 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들어오는 것은 아마도 처음이다. 벽에는 유신 이전, 신선조의 일원이나 거주지 같은 것이 수사물에서나 나오는 꼴로 아무렇게나 붙어있다. 지금와서는 아무 쓸모가 없는 장식일 뿐인 것을 느끼며 그는 그리 석연치 않은 기분이 되었다.
그런가. 이 자식은 유신 이후에도 이런 꼴로 지냈을까.
가족들이나 지사시절의 동지, 주변인들에게도 이런 모습이었나? 신파치는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해서, 이 모습으론 노인네같이 굴게 되는 게 영 마음에 들지않는다고 새삼스레 생각했다. 문득, 바둑판 위에 카노가 흑돌과 백돌을 두는 것이 눈에 들어와 그의 얼굴을 흘긋 살폈다. 도저히 취미로 바둑을 두는 얼굴이 아니다.
아마도, 카노는 흑돌과 백돌을 가르듯 자신의 동지와 신선조를 나누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이것은 지금도 다르지않다는 것을 신파치도 모르진 않았다. 그런 점에 있어선 이 놈의 취미로 적절하군. 블랙코메디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 작게 혀를 차는데, 카노가 고개를 들었다.
“재미없었냐.”
“너도 그리 재밌어보이진 않았다마는….”
“…….”
괜한 소릴 했을지도 모른다. 카노는 별 말을 잇지 않고, 바둑판 위에 바둑통 2개를 가지런히 놓았다.
“…그래도 네 놈이랑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뭐냐? 설명을 좀 하지 그러냐. 혼자 생각하면 모른다고.”
“네가…해주었으니까, 교환 같은거야.”
그제서야 신파치의 머릿속에 불이 켜졌다.
카노는 같이 영화를 보는 그 시간을 빚이라고 여기고있던 것이다. 좀 더 어울려달라고 한 것도, 자신이 억지를 부리고있다는 자각을 하고있었던 탓이다. 카노 와시오가 줄 수 있는 조용한 것은 이것 뿐이었던 탓에…수사물에서 증거가 맞아 떨어지는 장면의 형사가 된 듯한 기분이 든 신파치는 소리를 내어 웃고 말았다.
“너도 정말 바보구만!”
카노는 시선을 옆으로 돌렸지만, 바보라는 말에는 반박하지 않았다. 아니, 반박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조각조각난 파편 사이에 얼마 없는 것을 그러모은 것이, 바둑이나 두자는 말이라니. 스스로도 바보같다고 생각했다.
“시끄러워. 한 판도 못 이겼잖아. 흑을 잡은 주제에.”
“그렇군. 잘하는데, 응? 카노.”
신파치가 3판을 더 지고나서야 자신의 방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것은, 그 밤의 비밀이 되었다.